
– 일제강점기 억압 뚫고 이어진 우리 무예의 원형질
– 30년 추적 ‘개성 수박’과 ‘민둥씨름’의 혈맥
(김민정 기자)=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씨름’은 익숙하지만, 그 원형인 ‘민둥씨름’과 그 기술적 뿌리를 공유하는 전통무예 ‘수박(手搏)’은 낯선 이름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안에는 우리 민족의 기상과 개성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고독한 전승의 길을 걸어온 송준호 선생이 있다.
■ 개성 무인의 혼, 오진환과 송창렬을 만나다
송준호 선생이 추적한 수박과 민둥씨름의 계보는 1919년 개성에서 출생한 오진환 선생과 고(故) 송창렬 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9~2002 오진환과 송준호

충북 진천군 지원 논문 연구에서 오진환, 2006년 대한체육회 연구상 수상(전,대한검도회 부회장 김재일)

송창렬, 수박의 계승자로 고대 무예를 기억과 몸으로 전해줬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무예가 말살되던 엄혹한 시기에도 개성 지역의 어른들은 샅바 없이 몸과 몸으로 맞붙는 민둥씨름과 손을 주로 쓰는 수박을 통해 민족의 자부심을 지켜냈다. 송창렬 옹은 개성에서 행해졌던 수박의 실전 기술들을 몸소 체득한 인물이었고, 송준호 선생은 그 기억과 증언들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내기 위해 청춘을 바쳤다.
■ 30년의 추적, 샅바 없는 씨름의 실체를 찾아서
송준호 선생의 작업은 단순히 동작을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30년대 함경도 지역에서 촬영된 희귀 영상과 1940년대 신문 사료를 샅샅이 뒤졌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놀라웠다.
우리가 지금 아는 샅바씨름 이전에는 상대를 번쩍 들어 올려 중심을 뺏는 ‘배재기’, 다리를 직접 낚아채는 ‘손잡이형’ 기술 등이 민둥씨름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개성 수박의 손기술과 민둥씨름의 하체 제어 기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은 우리 전통 무예가 가진 광범위한 확장성을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

구한말 기산 김준근의 민둥씨름
■ “전통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송준호 선생은 말한다. “수박과 민둥씨름은 박물관에 갇힌 유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혈관 속에 흐르는 역동적인 에너지”라고. 그는 스승들로부터 이어받은 이 귀중한 유산을 교육 체계로 정립하는 데 매진해 왔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진심은 때로 불투명한 행정적 심의와 관료주의라는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준호 선생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개성의 뜰에서 사투를 벌이며 무예를 지켰던 스승들의 눈빛이 지금도 그를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준호 선생
■ 결언: 세계를 향한 첫걸음
오늘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씨름’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송준호 선생이 복원한 민둥씨름이 있다. 그리고 그 씨름의 기상을 완성하는 손의 움직임, 수박이 있다.
연재 1편에서 확인한 이 정통 계보는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 명성을 향한 독립적인 행보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송준호 선생의 집념이 빚어낸 이 불멸의 맥은 이제 새로운 시대의 문화 독립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 편 예고] 제2편: 가시밭길이었던 무형유산 지정 노력, 그 험난한 여정
- 국가무형유산 예비목록 등재부터 전승 종목 인정까지, 송준호 선생이 마주해야 했던 행정의 벽과 전승자의 고충을 조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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