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샅바 없는 씨름, ‘민둥’과 ‘네굽’ 사이의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다
– 홍기무의 기록과 1930년대 사료의 교차 검증
(김민정 기자)= 한국의 전통 스포츠 씨름은 흔히 ‘샅바’를 매고 하는 경기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역사의 궤적을 따라가면 샅바라는 도구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 오직 맨몸으로 맞붙었던 ‘민둥씨름’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연재의 첫 문을 여는 1편에서는 민둥씨름의 개념 정의와 그간 학계 및 민속 현장에서 혼용되었던 용어의 실타래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 민둥씨름인가, 네굽씨름인가: 용어의 혼선
민둥씨름을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난관은 명칭의 문제입니다. 흔히 샅바 없이 하는 씨름을 ‘네굽씨름’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료를 깊이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차이가 발견됩니다.
북한의 민속학자 홍기무는 1964년 저서 『조선의 민속놀이』에서 농촌의 ‘장난씨름’을 설명하며 샅바 없는 형태를 민둥씨름(네굽씨름이라고도 함)이라 기록했습니다. 반면, 이보다 앞선 1930~40년대 조선일보 기고문 등에서는 네굽씨름을 ‘띠씨름(허리에 띠를 매는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홍기무(1964): 민둥씨름 = 네굽씨름 (샅바 없는 형태)
- 조선일보(1940년대): 네굽씨름 = 띠씨름 (충청도 지역의 특색 있는 형태)
이처럼 ‘네굽씨름’이라는 용어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샅바 없는 형태와 띠를 매는 형태를 모두 지칭해 왔기에, 현시점에서 민둥씨름을 네굽씨름과 완벽히 같은 것으로 단정하기에는 교차 검증의 한계가 명확합니다.
■ ‘장난씨름’에 담긴 오해와 진실
홍기무가 언급한 ‘장난씨름’이라는 표현 때문에 민둥씨름이 격이 낮거나 임시적인 형태였다고 오해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씨름꾼들이 모이는 경기 방식과 구분하기 위한 표현일 뿐, 형태적 선후 관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농촌에서 씩씩한 기상과 날랜 몸놀림을 기르기 위해 행해졌던 민둥씨름은, 도구에 의존하지 않는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기술 체계를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촬영된것으로 보이는 민둥씨름 영상 캡쳐, 발굴 송준호
■ 씨름 원형으로서의 가치: 도구 이전의 몸짓
역사적 선후 관계를 따져볼 때, 도구 없이 하는 민둥씨름이 먼저 존재하고, 이후 허리나 다리에 끈을 거는 띠씨름, 그리고 현대적 샅바씨름 순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함경남도 촬영 민둥씨름 영상캡쳐, 발굴 송준호
일제강점기 조선씨름협회 등이 주최한 대회가 띠나 샅바를 활용한 ‘경기 씨름’을 표준으로 삼으면서 민둥씨름은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그 기술적 정수는 개성과 함경도 등 이북 지역을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 맺음말: 잃어버린 출처를 향한 여정
민둥씨름이라는 명칭의 정확한 문헌적 출처는 여전히 추적 중인 과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형태가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향유해 온 씨름의 엄연한 한 축이라는 사실입니다.
송준호 회장은 이러한 기록의 파편들을 모아 민둥씨름의 기술 체계를 정립 했습니다.
[다음 편 예고] 제2편: 씨름의 진화, 샅바는 언제부터 매었나?
- 샅바 이전의 시대, 끈(띠)에서 샅바로 이어지는 씨름의 변천사와 민둥씨름의 위상에 대해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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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st was last modified on 2026년 04월 24일 4: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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