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②] 씨름의 진화, 샅바는 언제부터 매었나?

– 도구 없는 ‘민둥씨름’에서 ‘샅바씨름’으로의 변천사

– 1940년 증언이 말하는 샅바의 정착 시기

(김민정 기자)= 우리는 씨름의 시작부터 샅바가 존재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역사적 증거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연재 2편에서는 씨름이 맨몸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둥씨름이 가졌던 ‘원형(原形)’으로서의 가치를 살펴봅니다.


■ 도구 없이 하다가 도구를 차기까지

인류의 모든 투기 종목이 그러하듯, 씨름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는 아무런 도구 없이 맨몸으로 맞붙는 방식이었습니다. 씨름의 진화 단계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뉩니다.

  1. 민둥씨름 시기: 샅바나 띠 등 아무런 보조 도구 없이 신체나 옷깃만을 잡고 겨루는 단계.
  2. 띠씨름(끈씨름) 시기: 허리나 다리에 간단한 끈이나 띠를 걸어 손잡이로 활용하던 과도기적 단계.
  3. 샅바씨름 시기: 허리와 다리를 하나로 묶는 현대적 샅바가 규격화되어 정착된 단계.

이 흐름 속에서 민둥씨름은 씨름의 가장 앞선 시대적 형태이자, 도구의 도움 없이 오직 신체 제어 기술만으로 승부를 가리던 순수 투기 영역이었습니다.

■ 1940년의 기록이 말하는 샅바의 역사

현대적인 샅바가 언제부터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1940년대 조선씨름협회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규격화된 샅바는 해방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그 이전인 일제강점기 초·중반만 하더라도 대회마다 방식이 달랐으며, 대부분은 허리나 다리에 간단한 끈을 두르는 방식이었습니다. 1927년 조선씨름협회 설립 당시에도 전국의 씨름 방식이 ‘왼씨름’, ‘바른씨름’, ‘띠씨름’ 등으로 파편화되어 있었고, 이를 통일해 나가는 과정에서 도구의 표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 왜 민둥씨름은 ‘장난’으로 치부되었나

북한 민속학자 홍기무는 민둥씨름을 농촌의 ‘장난씨름’이라 칭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치가 낮다는 뜻이 아니라, ‘비경기화된 형태’를 의미합니다.

  • 경기 씨름: 상금(소)이 걸린 판에서 규칙의 명확성을 위해 도구(샅바)를 착용.
  • 민둥씨름: 마을 청년들이 씩씩한 기상을 기르기 위해 수시로 행하던 실전적 형태.

일제강점기 민둥씨름 영상 캡쳐, 발굴 송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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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민둥씨름은 경기화라는 제도적 틀에 갇히지 않았기에 오히려 씨름 본연의 역동성과 원형적 기술을 가장 잘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속 단서

구한말 기산 김준근 민둥씨름

19세기 말 활동한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그림을 보면, 씨름을 하는 두 인물의 다리에 샅바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당시에도 도구 없이 하는 씨름이 보편적이었음을 시사합니다. 끈이라는 도구를 착용하는 것이 후대의 산물임을 고려할 때, 민둥씨름이야말로 우리가 복원해야 할 씨름의 뿌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편 예고] 제3편: 1940년 씨름 기술 체계 분석 – 민둥씨름의 실체

1940년 신문 자료에 기록된 배재기형, 거리형, 치게형, 손잡이형 기술이 어떻게 민둥씨름의 실전성과 연결되는지 심층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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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st was last modified on 2026년 04월 24일 4: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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