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조선족 씨름 왕! 마동일을 중심으로 중국 조선족 민족체육 전승자들의 삶과 연구과제인 ‘속쇄’ 그리고 그 주변문화를 들춰 보고자한다.
이 기고는 전통문화유산 수박을 계승하고 있는 사)대한수박협회 송준호회장이 중국 연변대학교체육학과와 한중무학연토회를 공동 주최,관하며 발굴 및 채집한 자료들을 한국시민기자협회를 통해 최초로 공개하는것이다.
<2편에서는 마동일의 삶을 조명하고 한국 씨름과 속쇄를 비교설명해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3편에서는 속쇄의 주변문화들을 적시하고 독자들이 궁금해 하실 실제 속쇄기술들을 소개 할 예정이다>
‘내 몸, 내 운동’으로 튼튼히 하자라며 ‘우리경기 몇 가지’를 소개했다. “지금까지에 제일로 널뛰기, 제이로 씨름, 제삼으로 장치기, 제사로 건네뛰기, 제오로 줄다리기를 전후 십 회에 분하야 술하얏거니와 그밖에도 평양에 날파람이며 서울의 택견과 함경도에 뭉구리가 있고…
기고자는 구한말 중국 동북삼성으로 이주한 조선족들간에 전승되어 온 속쇄가 동아일보에 적시되었던 함경도 지역의 뭉구리라고 본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함경도라는 지역의 특수성이 그것이고 또, 시기적으로 <동아일보>기사에 소개될 정도로 함경도 지역의 향토적 체기(술)였던 뭉구리가 1,20년 만에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은 논리가 부족하다는것이 그것이다.
<동아일보>에 뭉구리가 소개된것은 1930년 2월이다. 중국 조선족으로써 어릴때 속쇄를 하고 그 뒤 조선족 전문체육인으로 “씨름 왕!”이라 일컬어지는 마동일이 외부공개 활동을 한 시기는(1958년도 화룡현 서성공사 씨름대회에서 1등을 했고 1959년도 연변중학교팀 씨름대회에도 참가해 2등을 했다) 그렇게 멀지 않다.
*해방이후 뭉구리라는 명칭을 잃고 외부인자에 의해 씨름에 습합되는 과정을 거쳐 독립된 무형유산으로써의 정체성이 희석된것이다. 같은 예로는 한국의 택견이 있다. <조선무사 영웅전>을 쓴 안자산은 “씨름과 소이(조금 다른)한 것으로 택견이 일종이라 했으며 실제 택견기술들과 씨름기술들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택견을 씨름과 구별하듯, 앞으로는 속쇄(뭉구리)도 씨름과 구분하여 학술적 정립과정을 거침이 적절하다 여겨진다. 후속 연구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마동일의 씨름표연이란 누구든 상관없이 한판 해보자는 사람들은 모두 나서서 도전할수 있는데 마동일이 운동장 가운데 버티고 서서 연이어 달려드는 상대자들을 재껴치우는것이다.
1962년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대회에서 약관의 나이로 우승을 하고나서 실제 20여명을 상대로 죄다 2:0으로 이긴 일화나
그 이듬해 화룡현운동대회에서 마동일이 단 두판만 시합을 하고 1등을 했는데 참가한 선수들이 마동일과 붙는것을 기권 했기 때문이다
연변대학 체육학과 교수들과 속쇄로 연변대학교에서 최초로 석사논문을 쓴 최룡원군(중국 조선족씨름챔피언 출신) 등은 마동일이 년령과 체급에 관계없이 출전하는 전국 시합에서 우승한 것이 모두, 이 속쇄 기술을 어릴적부터 익힌 덕분이라고 했다.
*실제, 마동일은 어릴적 친구들과 조선족 사회에서 전해지던 속쇄를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놀이겸 익혀서 몸에 체득을 했다고 한다.
종목명/ 속쇄(뭉구리)
전승지역/ 함경도 인근
대표적 전승자/ 중국 길림성 연변주 화룡시 마동일(향년 80세)
자료채집/ 대한수박협회 송준호
연구참여자/ 중국 연변대학 교수 및 민족체육 전승자들, 길림신문 기자(언론인)인 연변대학체육학과 김영웅교수, 연변대학 태권도학과석좌교수 황경승(중국 태권도국가대표팀 감독), 김인택 연변태권도협회 부회장, 리설봉 중국 씨름협회장(연변성주청소년체육구락부, 연변유도대 교장), 길림신문 강동춘기자, 연변대학 체육학 박사과정 최룡원(중국 조선족 씨름챔피언) 등 7명
연구방향, 과제
기고자는 함경도에서 전승된 ‘속쇄’를 발굴하고 한국사회에 알려 공론화를 거치고자 수년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일 개인의 작의적 해석이 그럴듯하게 포장되는것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연구에 참여하는 전문인들과 직접 현지에서 증언등을 녹음, 연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선행조치가 따라야 한다.
상기와 같은 계획하에 기고자는 속쇄의 연구방향과 과제를 몇가지 도출하고 이를 현실화 하기위해 투고를 하는게다.
(1)중국 연변주 화룡시 거주 마동일씨가 어릴적 체득한 함경도 지역의 전래체기인 속쇄와 그의 삶 일부를 채집하였다.
(2)중국 연변대학 교수 및 민족체육 전승자들, 길림신문 기자(언론인)인 연변대학체육학과 김영웅교수, 연변대학 태권도학과석좌교수 황경승(중국 태권도국가대표팀 감독), 김인택 연변태권도협회 부회장, 리설봉 중국 씨름협회장(연변성주청소년체육구락부, 연변유도대 교장), 길림신문 강동춘기자, 연변대학 체육학 박사과정 최룡원(중국 조선족 씨름챔피언) 등 7명을 연구참여자로 하였다.
(3)2016년 6월부터 총 3회의 중국 현지 학술연토회를 통한 속쇄의 역사성, 전통성, 향토적, 기술적, 실체적 접근과 대표인으로 현지에서 인식되고 있는 마동일에 대한 생애사 일부를 증언과 관련 기사, 논문 참고 등으로 채집하였다.
내용의 신빙성을 높이고, 연구과제인 속쇄를 더욱 깊게 이해하기 위하여 주변문화로써 존재하는 함경도 수박춤과 북한에서 전해지는 수박체기 및 몽골의 국기인 벅흐, 일본 스모, 경북 군위군의 박시를 사회역사배경에 대한 문헌자료 수집과 기술의 동질성을 직접적인 비교, 교차검증으로 한국 샅바씨름의 아류라는 오류를 지적하려고 했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연구과제를 제시하였다. 첫째: 속쇄는 한국의 샅바씨름에 포섭되는 부분적 개념인가? 둘째: 속쇄의 독립적 문화유산으로의 가치는 어떠한가? 셋째: 한민족 무예사 및 민족 정체성확립과 동질성 회복에 어떤 기여를 하였는가? 등이다.
*속쇄의 역사성은 씨름과는 대비되는 고유체기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전통성(계보)으로 중국 현지에서 대표인으로 자리메김하고 있는 인물로는 중국 길림성 화룡시 마동일(당년 80세)씨가 있다. 후속 연구자로 연변대학교체육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중국 조선족 씨름챔피언출신의 최룡원군과 한국에 몇몇 실연가능자들이 있다. 사회성으로 주변문화에 고, 송창렬옹이 남겨놓은 개성지역의 수박, 함경도 수박춤과 북한에서 전해지는 수박체기 및 몽골의 국기인 벅흐, 일본 스모, 경북 군위군의 박시 등이 있다.
7인의 체육인들과 구술 면담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구한말 이후 함경도, 평안도 등에서 중국 동북삼성으로 이주한 이들에 의해 속쇄가 민간에서 전승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근대 격변하는 중국의 정치,사회구조에 문화적인 정체성이 함몰되고 또 다시, 회복하는 등 순환을 거듭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마동일은 실업팀 씨름선수에서 연변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공무원 신분에서 다시 배구 선수로, 조선족 씨름 왕의 위치로 중국 조선족 민족체육 선구자로 신분과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이 성립되며, 조선인은 중국의 56개 소수민족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52년 조선족 자치주와 자치현이 인정된것을 기회로 학교교육과 일상 행정사무에서 민족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조선족이 한반도의 문화를 계승하고 보존하는데 제도적 기반으로 되었다.
중국 조선족체육인들은 문화대혁명을 거치고나서 1970년대 초부터 공개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고, 개혁개방 초기에 조선족의 체육은 중국 상위권에 진입하게된다. 민족무용부문으로 조선족 무용은 타 소수민족들에 크게 자극을 주고 많은 소수민족 무용가들이 연변대학을 찾아 강습을 청하고 있다한다(연변대학교무용학과 한룡길교수,중국문화재 초심위원)
중국 조선족 이주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단오,추석 등 명절에 씨름,그네뛰기,널 등 민족체육 활동을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중국문화부에서 지정한 국가급무형문화재로 씨름, 그네, 널뛰기 등이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보호(우대) 정책하에 민족적 동질성과 전통문화를 보존·전승하고 있으나 민족체육부문에 있어서는 아쉬운점이 적지 않다.
조선족 체육인들이 전승하는 민족체육은 “씨름”, “활”, “그네”, “널뛰기”, “태권도”, 등이 있지만 한국의 대한체육회 가맹종목단체 영향을 크게 받아 체계, 경기규칙 등이 일본식, 서구화 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 연길에 거주하는 리설봉(연변성주청소년체육구락부, 연변유도대 교장)은 “지금 연변에서 하는 민족씨름은 한국에서 하는 샅바씨름이다!”고 했다.
특히, 중국 문화부에서 지난 2006년 중국 국가급문화재로 등재하려던 수박춤이나 속쇄 등은 인멸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 조선족 민족체육은 전형성을 크게 상실하고 대한체육회 가맹종목인 씨름, 궁도 등 일본과 서구식 지도체계, 등을 도입하여 전형성을 상실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소수민족들 중 대다수가 한족문화에 습합된것과 달리 조선족이라는 민족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지고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역동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수고는 평가할만하다.
용어 및 현지 관계자들 증언: 속쇄라는 명칭보다는 연변씨름이라고 현지에서는 일컬어진다. 그런데 이 연변이라는 지역명이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구 창립에 따라 생긴것이라 본래 이름이 아닌 것을 알수 있다.
*택견이 문화재로 지정되며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화되거나 씨름이 형태적 유사성을 가지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잇는것들까지 광범위하게 관념적으로 포섭해서 서로 다른 체기들을 하위분류로 만들어 놓거나 아류로 취급받게하는 오류가 없지 않앗다. 이 속쇄도 샅바 씨름과는 차이가 잇는 함경도를 중심으로 전해져 온 민족체기임을 본 연구에서 논증하려고 햇다. 주지하다시피 속쇄와 한국 씨름의 유사성보다는 속쇄와 만주족 각저, 몽골 벅흐, 수박(춤), 일본 스모 등이 더욱 비슷하다.
연구자는 지난 2006년과 7년에 걸쳐 중국 연변대학교 체육학과와 공동으로 한중무예학술연토회를 주최,관하며 이 속쇄라는 체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연유는 두가지였다. 첫째는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전해지던 민간체기들 중, 서울지역에서 행해지던 격도>물구나무를 서서 두발로 차는데 황소를 차면 즉사를 했다고 한다. 당시 기능자로는 김정의가 있다(생몰년도 미상)
함경도 뭉구리>실체에 대한 조사자료가 전무한 상태이다. 1930년대 동아일보에 조선반도의 대표적인 체술로 거론되어 있다.
*이 뭉구리는 머리를 박박 깍은 중을 조롱조로 부르는 은어로 알려져 있는데 형태어로 분류할 때 머리를 서로 마주대고 뭉기적 거리듯하는 그 어떠한 형태의 체기였을것이라 짐작이 된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이러한 민간의 무예적 성격을 가지는 격투술이 더러 남아 있었다.
속새관련 인터뷰 및 증언 등을 취합하기 전에 함경도 뭉구리와 개성지역에서 전해지던 수박(치기) 그리고 경북 군위군 전래 박시(조선 정조때 발간된 재물보의 시박,이라고 여겨지는/ 동지- 문체부 용역 세계태권도연수원 연구보고서 wtf정체성 확립에 관한 연구 등) 몇가지 체술의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선험 연구자들과는 다른 시각, 방향에서 접근이 가능했었고 실제적인 부분들을 연변대학 체육학과 교수(당서기 김영웅교수, 중국 태권도국가대표팀 감독 황경승(연변대학교 석좌교수), 연변태권도협회 부회장 김인택, 중국 씨름협회장 리설봉(연변성주청소년체육구락부, 연변유도대 교장, 중국 길림신문 강동춘기자 등 속쇄를 증언하는 연변지역 전문체육인들, 언론인과의 직접 인터뷰, 구술정리, 한국 씨름과의 차이점 도출, 몽골 버흐와 일본 스모와의 교차비교 등으로
흔히 한국 씨름의 일부분 내지 아류인 듯 인식되는 것이 근본적인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파악하였다.
속쇄는 씨름인가?
*쇠라는 의견과 쇄라는 이견이 잇다.
속쇄를 한국측에서는 함경도 씨름이나 연변씨름, 또는 근대 이전의 망걸이씨름 등으로 관념화하고 이해를 하지만 정작 그 향토에서는 이러한 명칭을 알지도 못하거니와 관계자들도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변대학 김영웅교수/ 속쇄는 한국 씨름과는 기술체계가 다르다! 길림신문 강동춘기자/ 속쇄는 함경도 특유의 것
전승지역: 함경도에서 행해졌다.
중화인민공화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화룡과 훈춘, 심지어 흑룡강성에서도 많이들 했다고 한다.
대표적 인물: 속쇄 기능으로 중국 조선족사회에 널리 알려진 이는 연변주 화룡시 출신의 마동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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