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송준호(대한수박협회 회장)
석전(돌싸움)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전해진 습속이다.
고려사, 목은시고 등에 기록이 있고 조선 태조, 이방원, 세종 때 기록도 있다.
영조 1년 비변사등록 기사에도 개성에서 석전하는 것을 금지시킨 기록이 확인된다.
석전은 개성 외에도 평양에서도 했었다.
이때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서로 치는 것 뿐 아니라 육박전을 같이 했는데 평안도에서는 날파람이라고 하며 개성에서도 기록은 부재하지만 육박전때 수박을 한 것으로 이해된다.
석전과 맨손격투로써 각 지역에서 했던 것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일제강점기때 개성에서 석전을 했던 곳, 장소와 수박을 전승한 이들출생, 거주, 활동지를 교차확인 할 필요가 있다.
1932년 생으로 개성 토박이 증언이 있는데 1940년경 까지도 개성에서 석전(돌싸움)을 했다고 한다.
이때 석전을 했던 장소는 개성의 남대문에서 아래쪽 만년교(돌다리) 옆 훈련원 터의 밭부터 야다리까지 근 6백미터 거리에서 북부패와 남부패로 편을 갈라서 싸웠다고 한다.<이상은씨(1932~,개성출생 증언>
[개성 석전 북부패,남부패와 수박 전승자들 출생,거주,활동지 겹쳐!]


개성이 해방후 미군정하에 있을때는 남한에 속했는데 6.25종전후 북한으로 넘어 가버
이후 세대는 개성이라고 하면 개성공단 밖에 모른다.
서울 어디어디 하면 직접 가서 보기도하고 생활과 맞닿아 있지만 개성지역은 그렇지가 않다.
2002년 국민생활체육 서울시전통무예대회가 끝나고 범기철 태권도 국제사범께서 주관한 좌담회에서 수박 기능자 송창렬옹이 개성 만월정 얘기하시다
기무라산! 기무라산 약수터,,그러시다 오진환옹에게 “기무라산, 알죠?” 물으니
오진환옹이 “아, 알지!”라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남한측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이들은 기무라산 그러면 당췌 무슨 말인가? 알아 듣지도 못한다.
개성이 북한측으로 넘어가며 오랜 기간 개성에서 전해진 씨름-바른씨름과 관덕정 활쏘기 문화나 개성에서 음력 정월에 행해졌던 석전도 전승이 단절됐다.
수박이 그나마 실향민 1세대로부터 전해져 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강점기 개성 석전 장소(1940년경 증언)
개성 남대문> 만년교, 훈련원 터로부터 야다리까지 6백미터
*개성 훈련원: 南部 곽장리(郭莊里)에 있던 武術演習場 때때로 弓術試驗을 보고 資格을 授與했다.
萬年橋 南方一帶
일제강점기까지 개성에서 석전을 했던 장소, 참여자들 지역과 수박을 했던 민완식, 오진환, 천일룡, 송창렬 등 출생, 거주, 활동지가 겹치는게 확인됐다.
개성에서 석전을 한것은 일제가 패망하기 전으로써 서울과 평양의 석전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맥이 끊어졌었다.
가장 최근까지 석전을 한 개성 지역은 일제강점기 일본 상권이 들어가지도 못했던 민족성이 강했던 곳이다.
고려의 강인함을 해방 전까지도 전해왔던 개성의 석전을 복원하는것이 시급하다.
개성에서 석전을 했던 곳과 개성에서 출생하고 거주, 활동했던 전통무예 수박 기능자들 장소가 겹친다는데 주목했고 이 개성의 석전판에 보부상들이 많이 했다고 알려져 있는 수박꾼들이 참가해서 석전을 했다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개성의 석전, 수박, 보부상 문화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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