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논문)1920년대 전통무예 수박 영상,독립운동가 김원보 선생 추정,조선총독부 지원 국책 교육영화 포함 고찰(네덜란드 사회과학연구네트워크)

(발굴)1920년대 전통무예 수박 영상,독립운동가 김원보 선생 추정,조선총독부 지원 국책 교육영화 포함 고찰 (Excavation) 1920s traditional martial arts video, presumed to be by independence activist Kim Won-bo, and consideration of a national educational film suppor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13 Pages Posted:

Junho Song

Northeast Asia Expert Forum

Date Written: October 20, 2025

Abstract

1920년대 수박 영상이 일제강점기 이규설 감독의 현존 조선 최초 무성영화에서 발견됐다. 필자가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었다. 영화 제목이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로써 당시 일제가 조선인들을 계몽하고자 제작했다는 한국영상자료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김원보 선생(1897년 출생, 독립운동가 추정)의 격투모습을 본것은 무엇에 끌리듯이 영상을 클릭했기 때문이다. 김원보 선생의 동작, 기술 및 몸 움직임 등은 필자가 해당 영상을 수차 반복해서 보고 영상을 캡쳐해가면서도 1920년대에 이렇게나 숙련 된 분이 계셨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된다. 영상 속 체격 큰분 성함이 김원보인데 이분 관련해서 이후 영화쪽에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같이 출연했던 박순봉의 경우 1970년대까지도 활발한 영화계 참여가 있던 반면에,,, 따라서, 감독을 맡았던 이규설이 이 영화 관련해서 민간인(영화인이 아닌) 김원보를 섭외(격투장면 촬영을 위해서) 했을수도 있다는 생각에(총 18분 분량 영화에서 격투장면이 1분이나 된다) 사회 다른 계통에서 김원보를 추적 했다. A video of the traditional martial art “Subak” (subak) from the 1920s was discovered in the first surviving Korean silent film, directed by Lee Gyu-seol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 had no reason to see this film. Despite the Korean Film Archive’s explanation that the film was titled “There’s No Poverty at the End of Labor,” and that it was produced by the Japanese to enlighten Koreans, I clicked on the video, seemingly drawn to the action. I watched the video repeatedly, capturing footage of Kim Won-bo’s movements, techniques, and body movements. I was so impressed by the skill of this skilled figure in the 1920s that I couldn’t find any further information about him. The large man in the video is named Kim Won-bo, but I couldn’t find any further information about him in the film industry. While Park Soon-bong, who co-starred with him, remained active in the film industry until the 1970s, Therefore, I suspected that director Lee Gyu-seol might have recruited Kim Won-bo, a civilian (not a filmmaker), to film a fight scene (the fight scene lasts a full minute in the 18-minute film). So, I tracked down Kim Won-bo through other social circles.

Suggested Citation:

Song, Junho, (발굴)1920년대 전통무예 수박 영상,독립운동가 김원보 선생 추정,조선총독부 지원 국책 교육영화 포함 고찰 (Excavation) 1920s traditional martial arts video, presumed to be by independence activist Kim Won-bo, and consideration of a national educational film suppor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October 20, 2025).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

황해도 서흥군 도면 송화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이었으며, 1919년 서흥군 도면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 시위가 열렸던 곳입니다.

이름/별명김원보(金元甫)당시나이22세
본적/주소황해도 서흥군 도면 송화리판결기관고등법원형사부
죄명보안법위반생산년도1919
주문상고 기각관리번호CJA0000450
판결날짜19190619M/F번호00930670
사건개요구성필에게 선언서를 빌려 읽고 군중이 면사무소 앞뜰에서 만세를 부르자 이에 참가하여 만세를 불렀다.

김원보(당시 기준으로 키, 체격이 크다. 무예를 익혔던 이로써 풍채가 만만찮다)

1920년대 수박 영상이 일제강점기 이규설 감독의 현존 조선 최초 무성영화에서 발견됐다.

이규설

Lee Gyu-seol / 李圭卨 / 1902 ~

대표분야

배우, 감독

활동 연대

1920, 1930

불망곡 (이규설, 1927)

홍련비련 (이규설, 1927)

농중조 (이규설, 1926)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 (이규설, 1920)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함경남도 함흥 출신이다. 1925년 윤백남프로덕션에 들어가 <심청전>에서 촌민역할을 맡으면서 영화에 입문하였다(대중예술인 사전). 그러나 윤백남이 <심청전>의 판로 확보에 실패하자 프로덕션은 곤란에 빠지게 되었다(동아일보). 이후 윤백남프로덕션의 동인들이 설립한 계림영화협회로 옮겨가 활동하면서 <장한몽>(1926), <산채왕>(1926)에 출연하였다. 1926년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 들어가 <농중조>의 주연을 맡았다(동아일보b). 이규설이 <농중조>의 감독이라는 설도 있다(김종원). 1926년 말에 이규설은 서봉옥과 함께 토성회를 설립하고 자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불망곡>(1927)을 내놓았다. 이규설이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다른 작품으로는 1928년의 <순정은 신과 같다>도 있다. <홍련비련>(1927), <회심곡>(1930)등 다른 감독의 작품에도 꾸준히 출연하였다. 해방 후 월북하였다(김종원).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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