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환(1919~2002), 범기철(태권도 7단)교수 녹취, 조사연구 일제강점기 전통무예 증언 Oh Jin-hwan (1919-2002), recording of Professor Beom Ki-cheol (Taekwondo 7th Dan), research study, testimony of traditional martial arts during Japanese colonial rule
29 Pages Posted:
Northeast Asia Expert Forum
Date Written: March 16, 2024
Abstract
일제치하때 태어 나 격동의 시기를 살다 가셨던 분들께서 남겨준 자료들을 후대에 전하는 것은 뜻하지 않은 저자의 의무가 되어 있다.
작고하신 선생님들 생전 영상과 기록들을 자료화 하고 있지만 역량 부족으로 아쉬움 또한 크다.
1919년 기미년에 조선국 개성에서 출생하고 1.4 후퇴때 남하해서 북녘의 가족들과 평생 상봉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오진환 할아버지와 함경남도 북청 출생으로 일본국 오사카 그리고 개성, 남한에 정착했던 송창렬, 전,대한검도회 부회장, 경기도 검도회장을 역임 하셨던 김재일 그리고 태권도 7단으로 미 아틀란타신학대학 범기철 교수 간의 대담, 증언 영상 캠코드 테이프를 재촬영해서 관련 자료집 출판과 학술 연구물로 공개하고 있다.
Suggested Citation:
Song, Junho, 오진환(1919~2002), 범기철(태권도 7단)교수 녹취, 조사연구 일제강점기 전통무예 증언 Oh Jin-hwan (1919-2002), recording of Professor Beom Ki-cheol (Taekwondo 7th Dan), research study, testimony of traditional martial arts during Japanese colonial rule (March 16, 2024).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 |
들어가며
연구자: 범기철/ 태권도 7단, 미 아틀란타신학대학 교수, 대한민국 전통무예제 주최, 관 국민생활체육 서울시전통무예연합회 부회장 역임
연구대상:오진환/ 개성 출생, 1.4후퇴때 남하, 개성 남산동 거주, 개성상업중학교 졸업, 철도직 근무
2001~2년 촬영자료
녹취는 2001년에서 2002년까지 이뤄진 대담 및 증언을 촬영한 캠코드 테이프를 재촬영 한 것이다.
오랜 기간동안 보관이 되지 않아서 화질이 좋지 않아 부득이하게 확인 가능한 부분들을 발췌해서 재촬영과 녹취를 진행 했다.
디지털 자료화 한 분량이나 내용만으로도 상당부분 의미가 있는 작업 이었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기존에 단행본으로 출판한 속쇄, 박시싸움과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의 전통무예 자료로써 교육적 목적으로 차후 활용된다면 저자의 수고 또한 보상이 될듯하다.
본문은 일제강점기 왜정치하에서 우리 전통무예의 한 축을 담당했던 수박, 즉 수벽에 대한 오진환의 증언을 중심으로 송창렬과 김재일, 범기철 등 연구자들 대담으로 저자의 의견을 최소화 해서 이해편의 차원을 넘어서지 않게 유의했다.
왜정치하의 우리 전통문화들은 무예 뿐 아니라 사회 각 부문에서 침탈의 대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뜻 있는 인사들에 의해서 그 명맥이 이어져 해방 후 다시 전승,복원, 재현되어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메김 하고 있다.
왜정치하의 민족체육 전승자들의 삶과 그 기예들을 추적, 정리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게 아니다.
오진환은 이 촬영 이후 작고 했고 송창렬은 그 뒤 2017년에 돌아 가셨다.
1930년대부터 해방되던 시기까지 조선의 무도가였던 민완식 선생(1911~1948)에 대한 오진환의 증언을 중심으로 일본 쇼토칸(송도관) 가라테도 후나고시 키친으로부터 일 본토에서 사사하고 1940년대 중반부터 개성에서 공수도를 지도했던 태권도 1세대 노병직 사범과 켈로부대 출신 이영철옹 기사, 민관식 총재(전,대한체육회 회장, 문교부장관 역임)과의 통화 그리고 개성 출신으로 민완식에 대해서 일화를 기록으로 남긴 분 등 자료들을 인적, 시기적으로 제시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조선 개성에서 수박을 직접 수련하고 목격한 행위자와 증언자를 두고 무예계 원로 및 체육학 박사들이 인터뷰 한 것을 녹취해서 정리 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용어 및 관계자들 증언
오진환과 송창렬은 수박, 수벽, 수박치기 그리고 수박타, 수벽타, 수벽치기 등을 혼용했다.
종목명/ 수박(수벽, 수박치기 등)
전승지역/ 서울, 개성(일제시대에는 경기도에 속했다), 함경남도 단천 및
대표적 전승자/ 송창렬, 김학현, 오진환
저자가 오진환을 전승자에 포함 시킨 것은 해방 이후 일본 무도인 유도, 가라테 등이 판을 치면서 한국 전통무예를 표방하는 많은 종목,단체들이 일본 무도체계를 받아 들였던 것과 달리 우리 전통적 체기들은 사사라는 개념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일본의 무도체계는 일찍이 도장문화로 자리 잡고 사제간에 이뤄졌던 교육이었던 것과 달리 조선의 무예는 관이 주도하고 민간에서 사사로이 도장을 개설하거나 일본처럼 어느정도 배운 경우 면허개전이라 해서 자격증을 준다던지 또, 다른 류파를 창시 한다던지 이러한 문화 자체가 전무 했기에 그렇다.
오며 가며 눈으로 보고, 한수 두수 정도 배우면 그나마 족했던 때이다.
오진환이 대담에서 자기는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진환의 동기패 중 몇이 민완식으로부터 배운 것은 오진환의 사고로는 사제간 행위였고 자기는 그렇지 못했다는 의미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영상에서 범기철 교수가 의식의 전달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저자 의견도 다르지 않다.
송창렬은 특히 기능이 뛰어 났었다. 그 이유는 본인이 증언하고 몸으로 보여 준 것처럼 당시 송창렬의 개인적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압록강 너머 장백조선족자치현에 거주했던 김학천도 기능이 탁월했었다.
이 경우도 김학천의 개인적 상황을 떼어 내고 이해하는 것은 맞지가 않다.
김학천은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 공공기관인 문화관 관장까지 했던 동생 김학현과 달리 평생을 과수농사를 짓고 움막에 거처하면서 산짐승을 잡는 삶을 살았었다.
연구참여자/ 오진환, 송창렬, 김재일, 범기철 등 4인
연구방향, 과제
연구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관계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을 직접 답사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 부분이 아쉽다.
송창렬이 수련 했다는 개성의 기무라산, 여웃골, 홍상점 뒤뜰 그리고 오진환이 민완식을 증언하는 개성 철도공원과 중산도장, 시청 근처 연무대 등,,
수박은 북한 지역에서 전해진 것이라 전문 연구가가 부족하고 또, 현장이 떨어져 있는 탓에 사람과 지역이 분리되어 고증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전승된 것은 시기를 달리해서 많은 이들이 기록으로 남겼고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서 증명을 해 왔다.
수박의 연구방향과 과제를 몇가지 도출하고 이를 현실화 하기 위해 녹취를 하는게다.
(1)일제강점기 출생한 오진환과 송창렬이 어릴적 체득한 전래체기인 수박과 그들의 삶 일부를 채집하였다.
(2)김재일, 범기철 등 신뢰 할 수 있는 무예계 원로, 교수 등이 참여했다.
(3)2001년 부터 2002년까지 총 3회의 대담을 촬영해서 수박의 역사성, 전통성, 향토적, 기술적, 실체적 접근과 송창렬, 김학현 등보다 더 빠른 시기 개성에서 수박을 전수했던 민완식이라는 존재를 발굴하고 그 기능을 비교,고찰 했다.
민완식에 대한 생애사 일부를 증언과 관련 기사 등으로 채집하였다.
4인의 구술 면담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구한말 이후 개성 지역에서 다수의 이들이 수박을 전승 해 왔다.
함경도 등에서 중국 동북삼성으로 이주한 이들에 의해 민간에서 전승된 것과 교차 검증이 이뤄졌다.
오진환 뿐 아니라 송창렬 등 격변하는 정치,사회 구조에 문화적인 정체성이 함몰되고 또 다시, 회복하는 등 순환을 거듭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오진환은 개성 상업중학교 졸업 후 철도직 근무하다 1.4후퇴때 남하해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했다.
김재일과의 대담에서 밝혔듯 당시 조선인들이 일본에 의해서 강제되었던 창씨개명에 대해서도 인간적 한계를 보여줬다.
송창렬은 함경도>일본 오사카>개성>남하를 했고 본인 얘기데로 걸렁패들과 어울리다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선장을 했던 형에게 붙잡혀 단국대학교에 들어 갔다고 한다.
하숙비가 없어서 새벽에 도망을 나오기도 하고 북한 의용대에 강제로 잡혀 갔다가 탈출한 뒤 국군에 자원입대해서 한라산 공비 토벌에도 참가하는 등 참전 용사였다.
송창렬 외삼촌은 국립극장 무대감독을 지내고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영화를 기획했던 최현민 감독이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단역 목사로 영화에 출연하는 등 젊은 시절을 보냈다.
[오진환, 범기철 교수 대담]
/건들대기.어르기 등 몸짓.형태 증언
범기철/ 그러니까,, 보신 것 자체, 그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진환/ 그니까 싸우도 안허고 싸움하는 것 같지도 않고 ,,건들 건들 하면서 “한번 해 볼래?”, 뭐 어쩌고 하고
범기철/ “한번 해 볼래?”,,
오진환/ 어, 그럼,, 저희 도장에 같이 다니는 지금 말하면 연수생이라고 하나 뭐라고 하나,, 같이 다니는 국민학생들 배우잖아요?
태권도(정확한 소리 확인 어려움),,
한번 해 볼래? ,, 그리고 어르는 식으로 이렇게 하는걸 보고 했지
범기철/ 진짜 격투기로,,(촬영 끊김)
시청 근처, 근방 연무대
오진환/ 연무대 도장,, 요즘,,
범기철/ 아! 연무대 도장에서,, 연무대 도장, 연무대 도장
오진환/ 신체를 연마한다고 해가지고 무술이니까 무술도 하고, 무자(글자)고 연무대
범기철/ 그렇죠, 연무대죠
오진환/ 그걸 민관식씨라고,, 아니 민완식이 개성서는,, 김두한이 oo야 독립운동하니까,, oo 나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범기철/ 민완식씨란 분이 민비의 조카군요?
오진환/ 어, 조카지 그럼,, 그니까 김옥균씨도 oo 독립운동,,김좌진 장군도 저, 만주 가서 날리고 그랬어
ooooo(소리 확인 어려움)
범기철/ 그럼, 그때 한번 보시고 그 뒤로
오진환/ 그때는 한번,, 물론 보지,, 보기야 늘 봤죠
범기철/ 늘 봤죠?
/수박은 택견과 다른것
태권도나,, 일반무술하고는 전연 다르죠? 형태가
오진환/ 다르죠! 오,,,
oo 춤 추는 것 모양으로 이, 흐!,, 많이 흔들고 보니까
범기철/ 그럼, 선생님 혹시 그 택견이라는거 말씀 들어 보셨어요? 택견
오진환/ 아 택견도 말은 들어 봤는데 그거하고는 다르O,,
범기철/ 또 다르죠? 다르죠
또 다르다,, 다르단 말씀이시죠 택견,,
오진환/ 아 그거는 다르죠!
범기철/ 택견과 다르다,,(메모장에 필기하며)
그니까 수박치기는 완전히 한번 해 볼래 하면서 (팔을 흔들면서) 춤 추듯이,, 서로 어울려서
치고 받고 하는게 아니라
오진환/ 어!,,
범기철/ 손뼉을 치며, 이런 것은 혹시 안하던가요?
오진환/ 손뼉도 친거 같긴 허고, 발길도 허고,,
그걸 내가 배웠으면 여기서,, 안 배웠거던요 지나가다 보고,, 헌거지
범기철/ 선생님, 고향은 개성 어디십니까? 고향이
오진환/ 개성? 개성 그 남산동이라고
범기철/ 개성시 남산동
선생님, 생년,, 언제 태어 나셨습니까? 태어날 때 천구백,,
오진환/ 아, 거기서 천구백,, 천구백십구년
범기철/ 십구년에,,
오진환/ 기미년 독립만세 할 때,,
범기철/ 아, 그때 나셨네,,(메모장에 필기하며)
오진환/ 6월 2일생
범기철/ 6월,, 2일생이시고
선생님께서는 태어난 후에 언제 여기 내려오셨습니까? 몇 년도에,,
오진환/ 아! 1.4후퇴,, 나왔죠
범기철/ 아! 1.4후퇴 나오셨구나
지금도 거기, 고향에 계시나요? 친척은 계시겠죠?
오진환/ 아! 많죠, 많지,,
범기철/ 몇남매 두셨습니까? 실례지만
오진환/ 삼남매, 아니, 이남 일녀,, 그러니까 삼남매지
범기철/ 고맙습니다, 저,, 이정도로 왜 그런가하면,, 우리나라가
선생님,, 잘 아시겟지만 무예정신이 없어 가지고 에어로빅이니,, 잡다한 것들이 나와서 전부 춤추는,, oo 흔적도 없고
이 정신이 들어 있는 춤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무예가 그래서
택견이 저렇게 문화재가 됐는데,,
택견도 하나의 놀이식으로 된 것이지
오진환/ 어, 그렇죠!
범기철/ 무예식으로, 무예식으로,,
오진환/ 옛날엔 그렇게 했어요!
범기철/ 무예식으로 갈수 있는, 어떤 그런 운동을, 아직 모르고 있어
그리고 수박도,, 일제 시대에 가라테나 공수도가 들어 와 가지고 그것이 수박도 해 가지고, 왜곡이 되 있어요
마치, 우리것인 것처럼,,수박도는 우리것이 아니라 진짜 수박치기가 우리꺼거던?
오진환/ 에, 수박치기에요!,,
범기철/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 뵌 목적은,, 일단, 아까 말씀하신
보셨다는것만, 증인 이시니까
오진환/ 아, 그럼, 내가 봤어,, 본건 한두번이 아니지
범기철/ 1930년대에 많이 보셨다
그러니까 확실히 수박치기가 있었다는거지?
오진환/ 아! 그럼,,oo(정확한 소리확인 어려움)
범기철/ OO 모르고 있단 말이죠,, 그걸 이제 저희들이 원형을 찾고, 해 가지고,
자료를 만들어서,, 수박치기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민속무예가 있으니,, 알려야 겠다,, 취지입니다
/남로당원에 피살된 반공 청년단장 소회
오진환/ 민관식, 문교부장관,, 추적을 해 봐야 알지
범기철/ 민관식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알수가,,
오진환/ 민관식씨가, 박정희 대통령 밑에, 문교부장관을 했어요
범기철/ 그렇죠, 예
오진환/ 추적을 해 봐야지,,
범기철/ 민완식,, 민관식 선생의 형이란 말이죠?
오진환/ 어, 친형이지
범기철/ 어, 친형이구나,,
이 분이 수박치기를 가르치셨단 말씀이시구나
오진환/ 어, 도장을 몇 개,,
범기철/ 연무대에서
오진환/ 연무대, 지금 말하면 도장
범기철/ 연무대 도장을,, 시청,,
오진환/ 김두한이가 형님,형님허고 OO 말하자면,,OO,, 독립운동가니까
범기철/ 지금, 이 분이 살아 계실까? 민완식 선생이
오진환/ 그 양반도 나이가 많아서,, 그거는
범기철/ 민관식 선생한테 물어, 여쭤보면 알수가 있겠네?
오진환/ 그렇지, 그렇죠
범기철/ OO,, (소리확인 어려움)
정리자/ 민완식 선생님, 그 예전에 피살 되셨다고,, 민완식 선생님,,
범기철/ 어, 어디서?
정리자/ 제가, 민관식 선생님한테 전화 한번 드리니까,, 북한에서 내려 온 간첩한테
오진환/ 아니, 그건 개성서, 민완식 선생, 개성,,시ooo(뒷부분 다리,로 들림)라고 있어
거기서 그때 백만원 현상금
8.15 해방 되고
정리자/ 청년단을 하시다 돌아 가셨,,
오진환/ 그 백만원에, 현상금 백만원에,, 피살 당했지
범기철/ 그러시구나,,
정리자/ 피살 되시기 전에, 인제 민완식 선생님이 수박을 가르치고 하셨다는,,
오진환/ 아, 왜정때 가르친,, 나는 왜정때 얘기지
8.15해방은,, 금방,, 짧은 시간이고,,
범기철/ 왜정때도 그걸 가르쳤다는 말씀이세요?
오진환/ 그러니까 왜정때 일본놈,,순사들 뭐고 다 배웠어,,
범기철/ 배웠어요? 어, 왜정때,,
오진환/ 그럼!,, 나는 왜정때 얘기지
독립운동가고,, 죄인 잡으려면 그런거 운동을 해야 잡지
유도만 가지고는 안되거던(손사례를 치면서)
유도는 댈수가 없어요!
정리자/ 어리실 때 말고, 30대까지도 그걸 뭐 보셨다고?,,
오진환/ 여기 나와서 30대지
정리자/ 그럼, 언제 개성에서 나오셨습니까?
오진환/ 1.4 후퇴,, 1951년 1월 4일이 1.4후퇴야
정리자/ 그럼, 민완식 선생님 도장을, 이래 운동하는거를 마지막 본게 몇세 정도?,,
오진환/ 그,, 몇센진 잘 기억이 안나 oo,,여하튼 8.15 해방 당시까지,,저그하면 알거야, 그때까진
/복장.광목으로 만들어 입고.시합 등
범기철/ 그 도장이 지금도 있을지도 모르겠네? 큰 도장 이었으면
오진환/ 글쎄,, OO 빨갱이 들이니까,, 모르죠, 어
그리고 햇수가 오래되요, 햇수가 50년, 해방,, 6.25가 저 50년 넘었는데
범기철/ 하여튼, 저희들은 선생님이 그 수박치기를 한복을 입고 개성 철도공원 앞에서 시합을 하고, 한번 해 볼래,, 이런 식으로
오진환/ 예
범기철, 오진환, 정리자/ OO(소리 확인 어려움)
오진환/ 얼르고,,어 (어깨를 들썩 거리며, 시늉하며)
범기철/ 이것이 택견하고도 다르고 태권도나 일반무술하고 다른 우리나라 전통무예가,, 이걸 보셨다? 이런거만 말씀 해 주신 것으로도 저희는 아주, 정말,,
오진환/ 아, 정말이에요! O(본으로 들림) 사실이야! 내가
범기철/ 그러니까 문화의 전달이 지금, 사진이나,, 선생님이 직접 안 배우셔가지고 저희한테 보여줄수는 없지만 의식적으로 선생님, 보신 그 의식을 가지고 계시거던?
오진환/ 예
범기철/ 그것도 전달이 가능하다고 그럽니다. 의식적으로도
오진환/ 글쎄,, 막 흔들어 이렇게, 이렇게(흉내를 내면서)
범기철/ 아, 그렇구나
범기철/ 택견,,
오진환/ 이 양반한테 늘 얘기 했어요,,
범기철/ 택견이라곤 안 했죠? 거기서 택견이라고는, 수벽, 수박치기,,
오진환/ 아, 수박치기라니깐!
/유도와도 다른것
범기철/ 수박치기는 무예로써 일본 순사들도 가르치고,, 배웠다고 하니까
오진환/ 예, 예
정리자/ 선생님, 혹시 연무대에서 민완식 선생님이 가르치신게 유도가,,
오진환/ 아 그분은 다 그 양반은 못 허는게 없어요
김두한이가, 형님, 형님허고 따라 다녔,, 나도 들어서 아는데 직접 본건 아니고, 김두한이가, 깡패라지만 깡패가 아니고 민완식 선생도 OO(소리 확인 어려움) 독립운동가에요, 말하자면,,지금 생각하면 깡패라고 하는데 깡패가 아냐!
정리자/ 선생님, 근데 그 혹시 연무대에서 가르친게 수박치기가 아니고 유도일 가능성은?,,
오진환/ 아, 유도는
범기철/ 유도는 아니죠? 유도도 가르쳤지만 유도하고는 달랐죠 그게,,
오진환/ 그렇지, 그거는 아, 나는 유도 얘기는 잘 안하잖아요?
정리자/ 예, 수박, 수박치기 하시니까,, 선생님, 혹시 그 수박, 수박치기 용어를 처음 들으신건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오진환/ 아, 그 당시에 들었죠!
범기철/ 그 당시에,, 9살, 10살,,
오진환/ 어, 9살, 10살 OO(소리확인 어려움) 지금 초등학교지만 옛날에는 공립보통학교야 우리 시대에는
/수박치기 등 증언
오진환, 범기철 마주 앉아서 서로 손바닥을 친다
오진환/ 이렇게 하고 이렇게 두손으로도 되고(범기철 교수 양 손바닥을 밀쳐내며)
이거 허고
자기 손뼉치고 이어서 OO(소리 확인 어려움)
정리자/ 잡아 넘기기도 하고 차기도 하고
오진환/ 근데,, 다 잊어 버렸어, 내가 다 잊어 버렸어
범기철/ 앉아서 이렇게 하던가요? 앉아서도
오진환/ 어!,,(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가지고 서서 뭐 발로도, 발로도 차고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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