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택견이 문화재 지정 즈음해서 역사왜곡, 기술 짜깁기 등 많은 의혹이 있지만 정작 우리는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다.
무비판적으로 제공되는 정보를 수용하는것은 교육적으로도 옳지 못하다.
초대 보유자로 인정 되었던 송덕기의 경우 택견을 배운 나이를 스스로 18세에서 12세로 바꿨었다.
그리고 위대택견과 아래대 택견으로 구분 했었는데 정작 기술 차이는 확인되지 않는다.
송덕기는 자신이 햇던 위대택견 모체가 서울 누상동 근처 안터바닥이라 했다가 후에 지역이 바꼈다.
삼청동, 사직동, 영천으로,,
임호한테 배웠다고 했는데 임호 실체도 불분명하다.
송덕기는 임호가 필운동에 살았다 했다가 또 다시 사직동에 살았었다고 했다.
시합을 했던 지역도 바꼈다.
누상동 근처 안터바닥에서 사직동 감투바위로,,,
송덕기는 83년 머리말을 쓴 책에서 자기는 위대인데 아래대와 기술 차이를 얘기하지 않았다.
아래대는 싸움하듯이 했다는 주관적 얘기만으로 위대,아래대 택견을 구분하기는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문화재로 종목이 지정되고 보유자 인정이 되려면 카테고리가 분명해야 한다.
즉, 위대 택견과 아래대 택견이 기술 차이가 있어야지 막연하게 위대, 아래대 차이는 싸움하듯이 한다라고 하면 그건 무형문화재 제도에도 맞지가 않은것이다.
1900년 서울 재동에서 출생했던 독립운동가 권태훈의 증언에 의하면 송덕기 택견의 경우 기술로 이해할때 위대, 아래대가 섞인 모호한 것으로 이해 된다.
송덕기가 주장했던 택견은 왕십리 오강패들이 했다던 아래대와 기술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카테고리를 계속 사용하며 더군다나 서울 필운대에서 무관들,활량들이 했었던 것을 마치 송덕기가 했었던 것으로 호도해서 정보를 짜깁기 해서 배포하는것도 확인된다.
송덕기는 당시 서민층으로 무관들이 출입 했던 필운대에서 같이 어울려 택견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당시까지 신분사회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정보만으로 송덕기가 1900년대 무관들이 했었던 문안택견을 하기라도 한듯 호도되고 있다.
문안 택견을 서민층에서 위대라고 지칭한듯 여겨지나 이는 지역 구분이라 보이고 행위주체는 분명하게 달랐다.
권태훈 증언에 의한 문안택견과 송덕기 주장 택견이 기술 차이가 큰 것도 지적되고 있다.
송덕기 택견은 무관들이 했던 문안택견이 아닌 서민층, 왕십리 등 지역을 포함하는 오강패 택견과 기술차이가 없는 모호한 것으로 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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