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구한말 서울 필운대에서 무관들이 했던 택견이 묻혀 있다.
1982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제데로 된 조사도 없이 검증도 되지 않은것을 지정해서 사회문제가 됐다.
필운대에서 했던 서촌 활량(무관층 등)들 택견은 송덕기의 서민층이 했던 택견과 기본부터 다르다.
무관 택견은 두사람이 마주하고 서서 양발을 11자 형태로 둔체 가르치는 스승의 팔짱 낀팔을 몸통에 끈으로 묶는다.
제자에게 교습하면서 제자의 실력이 조금 향상되면 한팔을 풀고 또 그보다 실력이 나아지면 나머지 묶었던 팔을 푸는데 이때 입문과정으로 넘어갔다 한다.
입문과정에서는 스승을 중앙에 두고 제자들이 삥 둘러 선체로 다수 교습법으로 실제 훈련을 지도했다.
이 과정을 거쳐야 입문자격이 주어졌다.
그리고 두사람이 어깨와 어깨를 비스듬하게 비껴 서는 형태로 겨루기를 했다.
무관들이 했던 무관 택견과 서민층, 왕십리쪽 오강패들이 했던것은 기본부터 다르다.
무관택견은 첫째 품밟기란게 없다.
제자리에서 좌우 옆으로 조금 움직이는 정도로 무게 있게 긴장감을 유지한체 행해졌다.
서민들이 했던 것은 품밟기라고 해서 양 발을 앞과 뒤로 자꾸 반복해서 움직이고 그에 따라서 상하체 움직임도 큰 반면에 무관들의 것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듯 무게 있게 진행됐었다.
연습법도 차이가 있다.
무관 택견은 스승을 중앙에 두고 다수 교습했던 반면 서민층의 것은 이러한 것조차 없이 겨루기를 하는등 질서가 없었다.
기술체계도 확연하게 다르다.
무관 택견은 문안택견이라고도 칭해졌었는데 무릎 아래만 발로 찬 반면에 서민들은 위,아래 가리지 않고 차기도 했고 위대,아래대 구분조차 모호 했었다.
무관택견에서 주로 연습 했던것 중 하나를 소개한다.
제자리에서 오른손을 높게 쳐 들면서 왼발로 그 손을 찬다.
이어서 왼손을 쳐 들고 오른발로 찬다.
즉, 손과 발을 교차해서 반복해서 차는건데 잘하는 경우에는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모래를 넣은 주머니를 만들어서 수련했고 상대를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약속하에 행해졌었다.
(독립운동가 권태훈 1900~1994 증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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