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군사합의는 준수되어야

지금 시급한 과제는 우발적 충돌의 방지

남북 간의 대치가 점차 위기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월 25일부터 이달 10월 9일까지 전술핵 운용 능력 강화를 위한 훈련을 시행했다고 공개했다. 이 기간 동안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다양한 미사일 12발이 7차례에 걸쳐 발사되었다.

북한은 지난 6월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일선부대들의 작전 임무와 관련하여 ‘전쟁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군사조직 편제 개편 안을 비준’했다고 발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핵 무력의 신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전술핵운용공간을 부단히 확장하고 적용수단의 다양화를 더 높은 단계에서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의에서는 국가 지도부와 국가 핵무력 지휘 기구에 대한 핵 및 비핵 공격이 감행되거나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에는 미리 위임된 절차에 따라 ‘핵 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 되도록 규정한 ’핵입법‘이 채택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남한, 미국, 일본 등을 상대로 한 대대적인 전술핵 운용 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대로 소형 핵탄두가 탑재된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번 훈련이 항모 로널드 레이건함 등 미 핵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한 대응이라고도 밝혔다.

북한은 지난 13일에도 전투기 위협 비행, 탄도미사일 발사, 서해와 동해상으로의 포 사격 등을 실시했다. 서해와 동해상으로의 포 사격은 14일과 19일에도 이어졌다.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남측이 10월 13일에 이어 14일, 18일에도 북측의 전방에서 포사격 훈련을 실시했으며 북은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동, 서해상으로 방사포경고사격을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또 ‘앞으로도 우리 군대는 조선반도의 군사적긴장을 격화시키는 적들의 그 어떤 도발책동도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철저하고도 압도적인 군사적 대응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하고 ‘남조선군은 전선지역의 군사적긴장을 유발시키는 무모한 도발행동을 즉시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합참은 북한이 제기한 ‘남측의 포 사격’은 주한미군의 다연장 로켓 사격훈련으로, 9·19 합의로 포병사격이 금지된 지역보다 훨씬 이남 지역에서 시행된 정상적인 훈련이었다고 밝혔다. 또 이달 17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22호국훈련’은 일부 미국 전력과 함께 실시하는 우리 군의 야외기동훈련으로 ‘육·해·공군 합동전력이 북한의 핵·미사일 등 다양한 위협을 상정하여’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훈련이라고 밝혔다. 물론 훈련지역 등 9.19합의가 준수되는 훈련이다.

한편 우리 합참은 북측 포사격의 탄착 지점은 9·19 합의에 따라 사격이 금지된 북방한계선(NLL) 북방 동·서해 해상완충구역이며 이는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합참은 ‘이러한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은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행위로서 엄중 경고하며 즉각 중단을 강력히 촉구’했다. 우리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한 것은 의도된 일련의 도발 시나리오의 시작일 수 있다’고도 경계하며 특히 작전현장의 지휘관과 장병들은 북한의 도발이 발생할 경우 ‘추호의 망설임 없이 자위권 차원의 단호한 초기대응을 시행하는 현장 작전종결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극단적 남북 대치 상황은 사실 예견되어 왔다.

지난 2019년 2월의 북미 간 하노이회담 결렬 및 그해 10월의 스톡홀름 실무회담 결렬 후 북한은 작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제2의 핵·경제 병진정책을 채택했다. ‘국방력 발전 5대 과업’으로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등의 핵무장 고도화도 제시되었다. 올 1월에는 싱가포르회담에서 중단을 약속했던 한미연합훈련을 미국이 다시 실시하고 대북 핵전략무기 등을 전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후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등을 선언했던 핵 모라토리엄 철폐 검토를 발표했다. 이어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3월 9일)된 후 3월 24일과 5월 4일에 ICBM 시험 발사를 실행에 옮겼다. 추가 핵실험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후보 시절부터 실패로 규정해온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군과 북한정권’을 ‘적’으로 명기한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 ‘3축 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징후를 탐지하여 선제타격으로 이를 무력화하는 킬 체인(kill chain), 미사일 방어, 대량 보복 등 일련의 군사조치들이다. 그동안 도상훈련 등으로 대체되어 왔던 한미연합훈련도 대규모 기동훈련을 포함하며 다시 시작되었다. 이의 정례적 실시도 공언되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확장억제)을 담보하기 위한 미국 핵전략자산 전개 강화도 이루어지고 있다.

윤 정부가 대북정책의 기본으로 제시하는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한다. 선(先) 비핵화 요구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북한이 먼저 비핵화와 개방을 이루면 소득이 3천 불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의 판박이다. 미국의 입장과 같이 북과의 대화는 열려있다고 하면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는 국제적 대북제재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남한의 북 선 비핵화 원칙과 유사시 선제타격 정책, 한미연합훈련과 미 핵전략자산 전개 등과 북의 모라토리엄 파기와 핵무장 강화, 핵입법은 상호 정면충돌한다. 극단적 위기 고조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처럼 한반도의 긴장 수위가 높아진 가운데 한국과 미국이 이달 말 대규모 공중연합훈련을 실시한다. 이번 훈련에는 한국에서 F-35A 등 140여대, 미국에서 F-35B 등 100여대, 도합 군용기 250여대가 참가한다고 한다. 핵추진 항공모함 레이건호 전개에 이어 F-35B 등 미국의 핵 전략자산이 잇따라 한반도에 들어오는 것이다. 최근 괌에 배치된 미 공군 B-1B ‘랜서’핵전략폭격기 참가 가능성도 보도된다.

이번 훈련에서는 참여 전투기 각각이 북한 핵심 표적 수백 개를 단번에 타격할 수 있는 훈련(Pre-ATO)도 진행된다고도 한다. 다시 한 번 한반도의 긴장이 크게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전술핵을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하마다 일본 방위상도 북한이 일본 타격에 필요한 미사일에 탑재할 핵무기의 소형화, 탄두화 등은 이미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바 있다. 이스라엘은 핵실험 한 번 한 적이 없으나 전략핵, 전술핵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미 북한은 6차례나 핵실험을 했다. 지난달 하순부터 이달 초순까지의 전술핵운용훈련은 글자그대로 이미 개발된 전술핵의 ‘운용 훈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상되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전술핵무기 개발을 위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핵전쟁의 참화, 남북한 절멸의 참화를 막기 위해서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다시 한반도 비핵화의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남북 간의 4.27판문점합의와 북미 간의 6.12싱가포르합의라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답안지가 있다. 왜 실행되고 있지 않는지를 찾으며 다시 비핵화의 길에 나서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우발적 충돌의 방지다. 작은 오판이 핵전쟁의 참극을 불러오지 않도록 남북 간 긴급 소통채널이 서둘러 모색되어야 한다.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내용을 방어적 훈련으로 축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훈련 내용이 방어적임을 상호간에 사전 통보하는 약정도 모색될 수 있다.

지금의 대치 상황에서 9.19 군사합의는 우발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9.19합의 파기운운은 참으로 경솔한 처사이다. 물론 북한도 9.19합의를 준수해야 한다.

강대강 일변도의 대치 속에서도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길을 우선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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