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편에 이어서 함경도 씨름 고찰을 한다.
- 목록 : 대표목록
- 국가 :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 등재연도 : 2018년
지역정보
⦁대한민국
생략
⦁북한
씨름은 북한의 모든 지역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수도인 평양은 씨름에 관한 규칙을 정하고 보호 및 전승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조선씨름협회를 비롯하여 평양에는 씨름과 관련된 여러 공동체와 조직, 기관들이 활동하고 있고, 또 매년 전국 규모의 씨름대회가 평양에서 개최된다.
지역별로 특히 두드러진 곳은 평안북도 룡천군, 염주군, 함경남도 함흥시, 강원도 원산시, 함경북도 회령시, 황해북도 송림시 등이다. 이상의 지역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 아래 이 유산을 연행하고 전승하고 있으며, 유명한 씨름 가문, 연행자, 보유자를 자랑하고 있다.
예능보유자
⦁대한민국
필자 주: 공동체 문화로 특정 개인, 단체 없음
⦁북한
조선씨름협회 서기장 정광철, 체육성의 김명수와 리치웅, 교육위원회의 염창기는 씨름의 연행과 전승에 관한 계획의 수립 및 실행을 담당하고 있다.
민속 전문가인 공명성, 임승빈, 김경찬, 그리고 씨름 기술에 관한 전문가인 김영일, 오창복, 김은일 등이 자문역으로서 학술적·기술적 전문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씨름감독으로 활동하는 리광혁, 최정철, 장명관 등은 대표적인 훈련 전문가이다.
3대에 걸쳐 유명한 씨름 강자들을 배출한 씨름 가문의 가장인 룡천군의 주창영, 염주군의 지소용은 씨름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평양시의 남광일과 박춘민, 평안북도의 조명진, 강원도의 김경수, 함경북도의 김철훈은 대표적인 씨름의 연행자이자 보유자이다.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의 림정애와 계손숙을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거주 지역에서 씨름의 전통을 장려하고 육성하고자 이 유산의 연행을 지원하는 책임을 다하고 있다.
함경도씨름은 북한에서 유네스코에 제출한 자료에 포함되어 현재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함경도 인물로 함경북도 김철훈을 대표적 연행자이자 보유자로 적시하고 있다.
종목 명칭 | 민둥씨름, 느즌샅바씨름,망걸이씨름 등 | 현지에서 민둥씨름 등 용어가 통용 된 확인이 안된다.함경도식 씨름으로 이해할 수 있는것에는 두가지가 있다.첫째- 현지인들이 일컫던 명칭 확인 어려움(일반적으로 민둥씨름이라고 한다)둘째- 속쇄 |
행위자(전승자) | 남한-해방전후, 6.25 등으로 남하한 함경도 실향민중 일부 추정북한-함경북도 김철훈 | 함경남도 북청 출신 송창렬과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 김달순(1886~1962)(부친 김홍필로부터 전수) 그 자제들 김학천, 김학현 |
형태 및 동작,기술 | 남북한 모두 왼씨름을 한다.북한은 남한과 달리 선 상태로 샅바를 잡는다. | 몽골 부흐처럼 마주하고 선 상대와 샅바 없이 하는 경우와한쪽 팔굽부위에 끈을 걸고 하는것 두가지가 있다. |
지역
무라야마(村山智順)의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을 보면
함경도는 단오 때 씨름을 하는 지역이 많았고(함경도 24개 지역)
추석에 씨름을 하는 지역도 있었다(5개 지역)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이 종목의 명칭을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함경도 씨름이라는건 정작 현지에서는 사용되지 않는것이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저쪽(함경도 지역)을 가리켜 함경도 씨름 운운하는것이지 현지인들은 지역명을 붙이지 않았다는거다.
오늘날의 왼씨름으로 통일된 것은 1962년이다. 대한씨름협회는 “각종 대회의 두 가지 방식 개최가 번거롭고 최고 강자를 가릴수 없다.”는 것과 당시 “왼씨름을 하는 씨름인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송창렬에 의하면 씨름,이었다.
필자가 2016년 중국 연변대학교에서 한중무학연토회를 연변대학교 체육학과와 공동 개최 할 즈음 발굴한 것으로는 속쇄가 있다.
종목- 씨름적으로 넘어뜨리기를 하는것
종목명칭- 씨름, 속쇄 두가지
함경도 씨름의 역사, 기타 문헌 기록들은 차후 정리하기로 하고 우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씨름적인 넘어뜨리기를 할때 함경도 지역에서 사용했던 용어에 주목해야 한다.
송창렬은 생전에 씨름을 6개월 정도 했었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쓴 자필기록으로도 확인된다.
그런데, 송창렬이 했던 씨름적인 기술들은 현재 대한체육회 종목인 한국 씨름이 하는것과 상이한거다.
첫째, 샅바를 매지 않는다.
둘째, 기술체계도 같지가 않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태권도 정체성 확립에 관한 연구로 세계태권도연수원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송창렬이 했던 씨름적 기술들에 대해서 정리를 해 놓고 있다.
송창렬은 수박에서 넘어뜨리기와 씨름(한국 샅바씨름 아님)을 딱히 구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되는데
교차되는 자료로는 1900년 서울에서 출생했던 권태훈의 증언으로도 이해가 된다.
권태훈은 수박은 손바닥치기를 하는건데 두사람이 마주하고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면서 연습한다.
그리고 그 손으로 붙 잡고 넘어뜨리기를 했었다고 했다.
이때 넘어뜨리기를 수박의 구성부분으로 볼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연계되는 것으로 수박과는 구분해서 인식해야할지는 행위자의 판단일 뿐 강제적이지 않았었다.
1919년 개성에서 출생했던 오진환도 다르지가 않았다.
오진환은 씨름의 목감아치기 기술을 민완식 선생이 했었다고 증언 했으며 유도가 아니다!고 했다.
이 목감아 치기는 유도나 기타 유술적 종목들에서는 일반적인것이기도 하다.
수박을 춤으로 췄던 것으로 함경남도 지역에 수박춤이란게 전해졌다.
2008년 중국 길림성 백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수박춤 기능자 김학현은 생전에 셋째형인 김학천과 함께
중국 연변대학교 류연산 교수, 서울신문 촬영기자 앞에서 상대방을 양팔로 부등켜 안고 드는 동작을 보여줬고 수박춤 진행과정에서 재현하는 격투에 이 기술(씨름의 들어찧기)을 한다.
이는 1886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출생하고 중국측으로 이주했던 김달순(부친 김홍필로부터 전수) 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함경도식 씨름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함경도식 씨름의 행위자로는 함경남도 북청 송창렬, 함경남도 단천 김달순 그 자제들, 북한 함경북도 김철훈이 있다.
상기 씨름적인 것들과 수박과의 관계는 행위자들의 인식과 그 범위문제라 사료된다.
이와 같은 논거로 볼때 송창렬이 했던 넘어뜨리기 기술들이 씨름의 기술들로써 수박과의 관계도 이해가 될 수 있다.
송창렬 자필기록
(다음편에 연재)
문화체육관광부, 태권도 정체성 확립에 관한 연구
(다음편에 연재)
송창렬 생전 영상
(다음편에 연재)
이로써 함경도 씨름의 명칭 관련 속쇄와 구분되는 즉, 샅바를 잡지 않고 떨어진 상태에서 몽골의 부흐처럼 했던 것을 1930년 초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하고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까지 함경남도를 왕래했던 송창렬과
1886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출생하고 중국측으로 이주했던 김달순(부친 김홍필로부터 전수) 자제들을 통해서 개괄적으로 살펴 봤다.
그리고 막연하게 함경도 씨름이라는것은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씨름 외에도 함경도 지역에서 행해졌던 속쇄가 있다.
속쇄를
느즌샅바 씨름이니?
망걸이 씨름?
등 으로 일컫고 있지만 현지인들은 속쇄로 통용하는것이 확인됐다.
구한말 중국측으로 이주 해 갔던 함경도인들이 전승한 속쇄는 현재 그 이름이 또 바뀌어 연변씨름이라고도 한다.
연변에서 하는 씨름?이니 연변씨름이란 식인데 이도 맞는 명칭이 아니다.
중국 연변주가 창립된것은 일제가 패망하고 나서이며 그 이전엔 연변이란 용어조차 없었다.
함경도 씨름의 명칭을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까지 씨름, 속쇄라고 한것이 정리됐다.
이 함경도에서 했던 씨름은 현재의 경상도식 왼씨름이 아니고 두사람이 떨어져서 맞 붙는 것으로 속쇄와도 구분되는 고유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를 또 민둥씨름? 이라고도 하는데 함경도에서 현지인들이 민둥씨름이라고 했을까?
또 선 상태로 샅바 없이 하는것을 선씨름이라고도 하는 등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
필자는 그렇지는 않았을거다 생각되며 함경남도 북청 출신 송창렬과 함경남도 단천 출신 김학현 등으로부터도 민둥씨름이란 명칭, 용어는 채집되지 않았다.
속쇄도 왼씨름과는 다른 것이다.
단지 샅바를 매고 잡는것에 국한되지 않고 연변대학 체육학과 교수 등 의견으로는 기술체계가 다른 것이다.
함경도 씨름-함경도식 씨름-경상도식 왼씨름도 아니고 속쇄도 아닌 상대와 떨어져서 맞 붙는 것에 대해서 교차확인 되는 자료를 공개한다.
필자가 찾은 것으로 1930년 함경남도 함흥 소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했던거다.
영상으로는 명칭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씨름협회 관계자는 민둥씨름이라고 하는데 함경도 현지에서 민둥씨름이라 했을리는 없다고 본다.
한가지 부언해서 송창렬이 일제강점기 해방전후 습득했던 씨름적 기술들이 후에 씨름이라 인식되었을 수 있다는거다.
함경남도 북청에서 송창렬이 동무들과 익혔던 것이 그 당시 현지에서 어떠한 명칭으로 일컬어졌는지까지는 지금으로써는 확인이 어렵다.
송창렬이 남하해서 6.25참전을 했었고 그 뒤 청,장년기를 남한에서 거주했던 까닭으로 명칭을 씨름이라 했을수도 있다.
이 또한 인식과 그 범위에 관한 것이다.
씨름은 특정한 한가지만을 얘기하는게 아니고 보통명사기도 하다.
정조때 발간된 재물보에는 씨름의 일종으로 시박,이란것도 나타난다.
씨름은 고려기 또는 졸교 등 한자로도 쓰였었고 거기에 시박도 있다.
이 씨름의 일종인 시박도 명확한 실체확인이 되지는 않는다.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왜정때까지도 했던 박시, 박시싸움이 아닌가 하는 필자와 연구자들의 의견이 있지만
단언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
막연하게 함경도 씨름이라 하지만 원래 명칭을 찾는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형태적으로는 한가지가 아닌 두가지가 확인된다.
함경남도 출생의 송창렬과 김학현 그리고 1930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촬영 된 영상 등으로 지금의 샅바씨름과는 다르게 두사람이 떨어져 있다가 맞붙으며 몽골 부흐처럼 했던 것이 교차 확인되며 시기를 소급해서 명칭을 확인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로 부득이 하게 /씨름/이라 해 둔다.
이 외에도 함경도에는 속쇄란 것도 행해졌다.
이 속쇄도 위에서 살펴봣듯이 느즌샅바니 망걸이니,,연변씨름이니 하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에 실시한 조사자료[1936~1941년]에 의하면 함경도 지방에는 오른다리에만 살태를 감아 상대가 왼손만으로 잡는 왼걸이씨름이라 해서 /편할데로 부르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2016년 중국 연길에서- 필자와 중국 조선족 씨름챔피언(87킬로그램급)
속쇄 11분 10초 부분 참고
여기에 속쇄를 하는 이들은 기술적으로 초보자로 보이며 경기 규칙 또한 중국 연변대학교 교수,체육학 박사,길림신문 기자, 중국 조선족씨름협회장 등이 증언했던 것과 다소 상이함
연변쪽에서는 양 무릎을 땅에 대고서 왼 무릎부터 세우는데 그때 세우는 다리 허벅을 쳐서 일어서기 전에도 넘어뜨려 승패를 짓기도 했다함.
위의 영상에서는 왼무릎을 세워 두고 심판이 시작! 구령을 하고 있어 차이가 있다.
(속쇄 관련 차후 상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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