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세상에 나온 것은 지금으로 부터 약 20만 년 전 이라고 한다. 그동안 인간은 혹독한 자연재해와 기근 그리고 전쟁과 살육 등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음은 가히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용케도 살아 남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옛날부터 권력자들은 사람 죽이는 짓을 마치 파리 잡듯 아무 죄의식 없이 자행했다. 1차 세계 대전에서는 약 3000만 명을 죽였고,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약 6100만 명을 죽였다. 6.25 동란에서는 약 138만 명을 죽였고, 캄보디아 킬링 필드에서는 약 300만 명을 살육하였다.
인간은 식량 충족의 목적이 아니면서도, 사람을 죽이는 짓을 감행하는 존재다. 종교 문제, 제국주의, 민족주의, 영토 확장, 권력 다툼 등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다량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시시대, 즉 법체계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살인이 정당화되었다. 부족사회에서는 소위 ‘신성침범’ 을 한 경우에는 사람을 죽여도 제재를 받지 읺았다. 아프리카 부족들에서는 근친간의 살인은 집안문제로 간섭도 받지 않았다. 케냐의 칸바족은 아내를 죽인 남편이 그 벌로 아내쪽 가족에게 소 한 마리를 주었을 뿐이다. 또한 쌍둥이의 탄생은 천재지변의 원인이 되는 현상이라며, 영아 살해를 정당화 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족사회에 있어 왕국의 생명력의 상징이 된 왕은 육체적 쇠약이 허용되지 않았다. 활력을 잃은 왕은 스스로 독을 마시거나, 작은 방에 유폐되는 식으로 살해를 당하였다. 한민족에서도 부여의 왕은 자연재해가 닥치면 왕의 자격을 잃은 것으로 간주되어 살해당했다고 한다. 또한 중남미의 고대왕국에서도 빈번하게 살육이 자행되었다. 1531년,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군인 180명을 이끌고 쿠스코를 점령하여, 잉카 아타왈파 황제의 근위대 5,000명을 모조리 살해했다. 유럽인들은 카리브해에 있는 섬들과 아마존 유역에 사는 인디오들을 씨를 말릴 정도로 살육했다. 가톨릭 수도사를 앞세운 스페인군은 가는 곳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마을을 짓밟았다.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윽박질렀는데, 따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불태워 죽였다.
1539년 플로리다에 상륙한 에르난도 데 소토는 신대륙에 없었던 결핵·천연두·홍역·콜레라를 퍼뜨려 인디언들은 벌레처럼 죽어갔다.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에 상륙했을 때 100만을 헤아리던 카리브 지역의 인디언은 50여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아마존강 유역의 인디오 역시 비슷했다. 푸투마요강 유역에서는 1900∼1911년 고무를 생산하는 데 동원된 인디오 가운데 3만명을 죽였다고 한다. 한때 약 600만 명을 헤아리던 인디오들은 오늘날 겨우 2만 명 밖에 남지 않았다.
1888년에 존 보이드 던롭이라는 사람이 타이어를 만들어 내자 고무값은 30배나 뛰었다. 백인들은 밀림에 고무농장을 세우고 인간 사냥꾼을 동원해 인디언을 잡아들였다. 인디언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고무나무 즙을 받으려고 날마다 10㎞가 넘게 밀림을 헤매다 죽어갔다. 농장주들은 손님을 초대해 파티를 할 때 인디언들을 나무에 묶어 표적으로 삼고 총을 쏘면서 즐겼다. 또 인디언들의 몸에 석유를 바르게 하고는 불을 붙여 타죽는 모습을 구경했다고 한다.
“칼을 녹여 쟁기로!”.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는 구호다. 전쟁과 무기의 상징인 칼을, 평화적인 생산의 상징인 농업의 쟁기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중국,북한,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국가들과 이슬람 과격집단 등 에서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자나깨나 살육의 칼을 갈고 있다. 인간의 욕심과 권력자의 사리사욕은 그 끝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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