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제강점기 전통무예 증언, 수박 형태, 동작(오진환 1919~2002) 수박과 택견은 관계 없어!

전통무예 수박 기술형태, 동작 증언,

오진환 1919~2002 일제강점기 철도 공무원, 개성 상업고등학교 졸업

*일제강점기 개성은 경기도에 속한 행정구역이었으나 서울권에 속했다.

민관식 총재 생전에 필자가 만났었는데 개성에서 서울로 열차를 타고 통학을 하셨다고 했다.

경기민요라고 하는것도 서울과 경기권에서 같이 불렸던 것으로 서울과 경기지역은 왕래가 빈번 했던 곳이다.

수박과 택견 양자를 모두 인지한 분들은 1900년생 권태훈, 최남선, 최영년 등이었고

권태훈은 서울 제동 출생, 최남선도 서울 출생. 최영년은 경기도 광주 출생이나 서울권 인사 였다. 이들은 수박과 택견을 구분했다.

경기도에서 수박을 하고, 하는것을 봤던 이들은 서울의 택견이라는 것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했고

-서울에서 수박을 한 이로는 권태훈, 그리고 증언자로 예용해 선생 등이 있다.

서울에서 택견 했다는, 봤다는 이들은 경기지역의 수박 뿐 아니라 서울의 수박도 전혀 몰랐다.

북한 민속학자 계정희 교수가 1964년경 개성에서 택견을 발굴하고 그 내용들을 학술지에 발표 했는데

서울의 택견이 인접 지역인 개성으로 전파 되었다 이해 할 수 있다.

수박은 발생 지역이 조선초기 이후부터 서울 이었다.

그 이전의 지역적인 것들이 각 지역에서 고유하게 인적 전승 되었으리라는건 상정하기 어렵다.

수박은 함경남도 무반 세력들이 서울로 이동하고 중국 측, 그리고 민간의 것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습합되어 인접 지역들로 전파되어 전해진 것으로 이해함이 적합하다.

*이렇게 여러 인물들의 증언과 기록들로 서울의 수박과 택견이 지역으로 전파 된 것은 확인 되지만

수박의 경우 한반도 북부 함경도와 중국까지 근대 이전에 행해진 것이 확인 되는 반면에

택견은 서울>개성이 다이다.

*정정한다.

수박-일본 스모 및 일본 스즈카 지역 조선통신사춤 그리고 일본 사찰에서도 수박춤 동작이 채집 됐다.

택견-코리안게임스에 “택견하기” 명칭으로 당시 일본에서도 같은것을 한다고 했다.

중국 남방 천주지방/취안저우에도 수박이 남아 있다.

이것은 춤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데 천주는 고려에 귀화나 공물을 바치는 등 고려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문헌의 수박희를 단순하게 수박 겨루기로 이해하는 측면이 있는데

북한 식으로 수박희는 손벽희,이고 손벽희는 손벽춤이다.

또한 손벽춤은 수박춤이기도 하다.

즉, 수박희= 수박춤이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의 수박희를 수박춤으로 이해해도 무관하다.

용어> 역사> 실제 내용으로 파악 해 갈때 그 내용면에서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오진환 할아버지는 왜정때 개성에서 출생, 서울에서 작고 하셨다.

반공청년단 단장 민완식 선생을 흠모하시던 청년 이었지만 철도 공무원으로

개성철도역, 해방 후에는 서울역에서도 근무 하셨다.

명칭을 수박, 수벽, 수박(벽)치기 등으로 혼용 하셨다.

기술형태는 손으로 치고 막고, 힘을 쓰 넘어트리거나 발로 차는 등을 증언 했고

몸짓으로는 건들대기, 우쭐 대거나

“한번 해 볼래?” 등 당시 현장의 문화를 직접 보여줬고 증언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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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김명곤의 조사에 의하면 택견 송덕기, 및 신한승 모두 수박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는것이 확인된다.

이후, 문화재관리국에 택견 조사보고서가 수박= 택견으로 짜깁기 되어 보고 되었고 문공부 허모 차관 하에 일사천리로 지정된건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내막이다.

수박과 택견과의 관계는 일제강점기 수박에 대한 증언과 기록을 남긴 송창렬, 오진환, 김학현, 노병직, 권태훈, 예용혜, 최남선, 최영년 등

송창렬-택견 모른다!

오진환-택견과 다르다!>오진환 할아버지가 해방후 서울로 거주를 옮기고 현대 택견이 방송 등에 나온것을 의미함

김학현-택견 못 들어 봤다!

노병직- 차후 택견인것 같다!

권태훈- 지금하는 택견은 가짜 택견!

노병직 사범의 경우, 차후에 자신이 수박희라 배운게 택견이라는듯 언급 했으나 이는 보통명사를 오해한 측면이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최남선, 최영년은 수박과 택견을 구분했다.

택견에 대한 증언과 기록을 남긴 송덕기, 신한승은 수박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최남선은 수박은 권법, 후에 아이들 요희가 됐다 했고 택견은 단오날 씨름과 같이 하던 놀이로 기록해서 구별했다.

문화재 전문위원을 지낸 예용해 선생은 해방후 그가 봤던 수박(수벽)에 대해서 증언 했고 택견은 인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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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용해가 증언한 수박의 형태적, 동작적인것은 대한택견협회 이용복> 전,경기도검도회 김재일 회장으로 전달됐다.

예용해 선생이 증언한 것은 지금의 택견과는 다른것이다.

택견이 역사가 얼마 되지 않으니 수박 문헌을 짜깁기 하는것은 지양되야 한다.

내로남불이라고 그러면서 태권도 욕 해서야 되겠는가?

재물보 탁견은 보통명사다> 그 때 그 싯점에 재물보 편찬때인 1798년경에 지금의 고유적 택견이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기에

그것을 찾는 것은 관계자들이 할 일이지 문헌 짜깁기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없는것을 필자가 만들어 줄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물보 이해 안되는 이들이 많아 부언하자면

재물보 탁견은 보통명사고, 재물보에 수박-수벽, 시박, 씨름의 일종 역시, 또한 탁견과 같이

고유적인게 있지만 탁견-보통명사 외 고유적 택견이 재물보에 기록이 안돼 있단거다.

고유적 택견이 재물보 편찬시기에 있었다는 그 외 근거도 전혀 없다.

고유적 택견의 역사는 코리안게임스로 1백년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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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 증언과 기록으로 수박과 택견은 분명하게 구분되고 있으며

그들간의 관계를 연결 할 연결고리조차 없는게 사실이다.

재물보 탁견 용어로 수박이 지금의 택견이라는건 초딩 수준의 문장 해석 능력인거다.

(영상을 대충 이해해선 전통적인 것들을 놎칠수가 있다)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일본 무술인 유도, 켄도, 공수도를 제외하고는 도장이란게 없었다.

씨름만 봐도 그렇다.

도장에 등록하고 회비 내고 배우던 시절이 아니다.

오며 가며 인연따라 학습 했었고

물론 그 이유로 기술 습득에는 편차가 있었다.

오진환 할아버지가 영상에 보여주는 것만해도 손바닥으로 좌,우측 치거나 주먹치기

그리고 팔 들어 막기-이때는 위아래로 팔이 교차한다.

양손 떼밀기, 박치기도 보여 주셨다.

지금과 같이 일본식으로 포장 된 무예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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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 민완식 선생(대한체육회 초대회장 민관식 총재의 형)이 해방 전 개성에서 남부유도관을 했었고

그 도장을 빌려, 태권도 1세대 노병직 사범이 가라테도를 가르쳤었다.

이후 민완식-오진환과 노병직은 수박에 대한 증언과 자필 기록을 남겼다.

오진환 할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것만해도 일본 식으로 류파를 만들수 있을 정도다.

무슨 얘기냐 하면 일본식처럼 교육을 목적으로 (불필요하게)1번, 2번 나누지 않았을 뿐

몸을 쓰는 체와 그에 따른 용법이 우리 전통적인 것에 있었고

그 외에는 곁가지 즉, 응용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2017년 작고하신 송창렬은 수박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기량적으로도 탁월하신 분이었다.

이분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1931년 출생(함경남도 단천 원적)의 김학천 선생 밖에 없었다.

김학천 사망 후에도 중국 문화부에서 중국 국가급무형문화재로 등재 추진 했었고

2008년에 중국 백산시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춤으로 알려져 있을 뿐 무예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합기도 원로 김정윤 선생(최용술 제자, 대한기도회)은 누가 나한테 수박춤이 무예적이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 하시겠다고 했다.

지금의 인식으로 비교할수가 없는 이전 시대의 것이다.

평안도 용강군 출신으로 캐나다에 이주한 분에 대해서 증언이 있다.

그 아들이 캐나다에서 태권도 체육관을 하고 있는데

왜정때나 지금도 평안도 날파람에 대해서는 희자 되고 있다.

왜정때, 날파람을 하는 사람들이 길에 있는 전신주(전봇대)를 이마로 들이 받으며 힘을 과시 했다고 한다.

이 하나만으로도 당시에는 무예이기도 했고 싸움 기술이기도 했고

특기가 될만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오진환 할아버지의 증언과 동작들을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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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st was last modified on 2024년 03월 15일 2:16 오전

Categories: 자유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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