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민족의 비손과 노자의 장생구시

삼한시대에 제의를 지내던 곳인 소도[蘇塗]에 솟대란것이 있다.〈삼국지>위지 동이전(魏志東夷傳) 한조(韓條)에 “신을 믿으므로 국읍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했다. 또 이들 모든 나라에 각기 별읍(別邑)이 있어 긴 장대에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신을 섬긴다. 

솟대의 기원은 청동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분포는 만주·몽골·시베리아·일본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이다. 이는 솟대가 북아시아 샤머니즘 문화권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신앙물임을 알려준다. 

巫 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잇는 이를 뜻하고 비손의 마주한 손은 초월적인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것으로 솟대(신단수), 제사장에 해당하는것이다. 

무가에선 비념이나 손빔으로도 불리운다. 원래 우리네는 신에게 절을 하지는 않았다. 절이란 공경과 존경의 의미이니 유가쪽에서 들어왔지 싶다.
 
신을 대할땐 두손을 마주대고 흡사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란 식으로 비비는것이 비손의 원형질로써 파생되어진 수련법이 전해져 온다. 

신과 인간의 매개를 신단수가 하지 않고 이때는 손이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때 칠성을 부르고 삼신을 찾게되니, 민족정신문화의 원형이 숨어 있는 것이다. 


노자(老子)의 수행법(修行法)의 하나로 흔히 ‘장생구시(長生久視)’가 손꼽힌다. ‘장생구시’란 도덕경(道德經) 59가름(章)에 나오는 대목이다.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는 이것을 풀어 ‘길이 살아 오래 보는 것’이라 했다. ‘길이 사는 것’ 또는 ‘오래 사는 것’은 유사 이래 인간이 희구(希求)해 왔던 바였다. ‘장생’을 결정하는 것은 ‘구시’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시’란 눈을 깜박이지 않고 오래도록 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초심자(初心者)는 의례 눈을 반개(半開)하든가 또는 살짝 감으라는 소리를 듣는다. 눈을 뜨고 좌선하는 단계는 그 자체가 매우 높은 경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달마(達摩)가 면벽구년(面壁九年)한 것은 눈을 감고 한 것이 아니라 ‘구시’를 한 것이었다. 이때의 ‘구시’는 ‘시이불시(視而不視)’ 즉 ‘보아도 보지 않는 것’이요, ‘평시(平視)’ 즉 ‘초점을 맞추지 않고 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풀이는 결국 ‘구시’가 우주(宇宙)와 ‘하나’되는 방법임을 일깨워준다. 선경(仙經)에 보면 ‘욕득장생(欲得長生) 선수구시(先須久視)’라는 대목이 나온다. 오래 살기를 바라면 먼저 오래 보기부터 하라는 가르침이다. 

첫째는 구시상전위신장생(久視上田爲神長生)이다. 상단전을 구시하면 ‘정기신(精氣神)’ 가운데서 ‘신’이 장생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구시중전위기장생(久視中田爲氣長生). 중단전(中丹田)을 구시하면 ‘기’가 장생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구시하전위형장생(久視下田爲形長生). 하단전을 구시하면 몸(形) 즉 ‘정’이 장생한다는 이야기다. 

노자(老子)에 관한 ‘사기(史記)’의 기록은 매우 흥미롭다. ‘사기’에는 노자(老子)가 1백 60여 세 또는 2백여 세까지 살았다는 설(說)과 함께 이것이 수도양생(修道養生)으로 말미암은 ‘장생’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결국, 비손과 구시는 삿된 마음을 끊고 집중을하여 천지에 하나되는 방법으로 맥을 같이한다. 

좋은 염원을 투사하면 그 반사파는 염원을 발한 사람에게 돌아오게 된다. 즉 좋은 기운이 돌아 온다는 것으로 항상, 좋은 생각을 해야 하는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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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st was last modified on 2021년 11월 07일 2: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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